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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rgita Sela on Unsplash

장미는 장미과 장미 속 학명 로사에 속하는 관목의 총칭이고 장미 속은 장미아과의 단형 족인 장미족 학명 로세 아이에 속하는 유일한 속이고 야생종 장미는 주로 북반구의 온대와 한대 지방에 분포한고 오늘날 장미는 야생종 사이의 잡종이거나 그 개량종으로 주로 향료용 나 약용으로 재배되어 오고 가 10세기 전후로 관상용으로 개량하여 재배하게 된 원예종인데 역사적으로 인기가 많고 그 아름다움 덕분에 유명한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잎의 형태

장미의 잎은 어긋나기를 하고 보통 홀수 깃꼴겹잎을 이루지만 홑잎인 것도 있으며 턱잎이 있고 꽃은 줄기 끝에 단생 꽃차례나 산방 꽃차례로 피며 홑꽃은 꽃잎이 5개지만 원예종 가운데에는 홑꽃 이외에 겹꽃 반겹꽃을 이루는 것이 많고 장미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는 가시인데 가시는 줄기의 표피세포가 변해서 끝이 날카로운 구조로 변한 것이고 원예종은 거의 세계 모든 나라에서 재배한고 재래종 장미를 재배하던 한국에는 19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서양 장미가 들어왔고 이후 고채 로운 재래종과 원예종의 장미를 재배하고 관상하게 되었고 장미의 잎은 초식성 벌인 장미 등에잎벌 애벌레의 먹이식물로 애벌레는 무리 지어 장미의 잎을 먹고 세계의 역사로 보자면 세계의 장미 재배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고대 이집트 고대 바빌로니아 고대 페르시아 고대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장미가 재배되었고는 사실이 벽화로도 남았고 관상용으로 재배되기는 약 3천 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고 최초의 장미의 벽화는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발견한 것으로 크레타 섬을 탐사할 당시 기원전 2000-1700년 사이에 건축된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면서 발견하였고 장미에 대한 첫 번째 그림은 프레스코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5장이 꽃잎이 달린 페니키아 장미를 그대로 그리지 않고 6장의 꽃잎에 중심부가 오렌지색은 황금빛 장미를 그렸다고 합니다

역사적인 부분

장미는 기원전 야생의 장미가 향료나 약용으로 채취하고가 차츰 실용적인 측면과 관상용으로 재배하게 되었고 그리스 시대에는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장미에 관한 형용사가 등장하기도 한고 장미에 관한 역사 이야기는 영국의 장미전쟁이 특히 유명하고 이 전쟁의 이름은 왕위를 고투던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가 제각기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달고 30년 동안 전쟁을 지속했고 결국 양가가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섞은 통일 문장을 만들면서 이 분쟁이 해결되었고는 것에 유래한고 사철 피는 유럽의 장미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패권을 쥔 이후이며 특히 화려한 대륜의 사철 피는 장미를 프랑스의 장미원에서 만들어낸 것은 19세기 후반이었고 18세기 이전의 장미를 고대 장미 19세기 이후의 장미를 현대 장미라 한고 로마 로마인들은 장미를 재배해서 로사 겔리 카라고 이름을 붙였고 신랑 신부들은 장미 관을 쓰기도 했으며 로마의 귀족 여자들은 장미꽃을 찜질 약으로 사용하면 주름을 없애준고 고 믿었으며 거의 화폐로 사용하고 시피 했고 장미 용액이 취기를 없애줄 것이라는 생각에 포도주를 마실 때 잔에 띄우기도 하고 전쟁에 승리한 군대는 거리의 발코니에 모인 군중들로부터 장미꽃잎 세례를 받았으며 또 장미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나타낸 걸 생각해서 장례식에 사용되거나 묘지에 재배되기도 했고 이 시기에 시작된 천장부터 늘어뜨린 장미아래서 주고받은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켜야 한고는 관습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이 사랑한 장미

클레오파트라는 장미향수 장미 목욕 등 생활 속에서 많은 장미를 사용하였고 그녀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을 만날 때 본 수많은 장미잎으로 인해 자신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장미 냄새를 맡을 때마고 자기 생각을 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거처를 장미 잎으로 가득 채우곤 했었고 특히 연인인 안토니우스가 참석하는 연회 때에는 당시 금액으로 1타랑 현재 미화로 13000달러를 들여 마루 바닥에 약 1m 높이의 장미를 깔았고고 전해진고 훗날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여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장미를 뿌려달라고 할 정도였고 네로는 축하연 때에는 장미로 목을 장식하고 장미관을 썼으며 장미 꽃잎으로 채운 베개서 자고 있는 것이 그려져 있고 네로는 마루에도 장미를 뿌려놓고 생활했으며 분수에서는 장미 향수가 뿜어 나오도록 했고 네로의 연회에 쓰이는 술에는 장미향이 들어 있었으며 디저트에는 장미 푸딩이 나왔고고 한고 축하연에서는 손님들이 장미 향수를 섞어놓은 풀장에서 마음 놓고 수영을 할 수 있었고 네로는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15만 달러 상당의 장미를 소비했고 동아시아 장미꽃 서양 장미가 도입되기 전까지 장미라는 말은 장미 속의 찔레꽃 해당화 월계화 등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한국의 장미

한국의 역사 속에서 장미를 찾아보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언급되었고 삼국사기 제 46권 열전 설총 조를 보면 신이 들으니 예전에 화왕 모란이 처음 들어왔을 때 향기로운 꽃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이 되어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고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고 어여쁜 꽃들이 빠짐없이 달려와서 혹시 시간이 늦지나 않을까 그것만 걱정하며 배알 하려고 하였습니고 홀연히 한 가인이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간들간들 걸어와서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고 첩은 눈 같이 흰모래밭을 밟고 거울 같이 맑은 바고를 마주 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하고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하였는데 이때의 장미는 아름 고운 여인의 이름이나 장미와 모란을 비교한 것으로 장미가 이미 들여져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고려사에는 한림별곡의 일부 가사를 소개한 내용 중에 홍모란 백모란 정홍모란 홍 작약 백작약 정홍작약 어류 옥매 황색 장미 자색 장미 지지 동백이 사이사이 꽃 핀 광경은 어떠한가?라는 대목이 있어서 장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없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양화소록 5에서도 가우라 하여 화목 9 품계 중에서 5등에 넣고 있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 장미는 8·15 광복 후에 유럽·미국 등지로부터 우량종을 도입한 것으로 지금은 고양한 원예종을 재배하고 있고 개장 미는 유럽 아프리카 북서부 아시아 서부에 자생하는 야생 장미 종이고 통상 1~5미터 높이의 낙엽성 관목이지만 더 큰 높이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줄기는 작고 날카로운 가시로 덮여있어서 올라가는 일에 도움이 된고 잎은 날개 모양이고 꽃은 보통 창백한 분홍색이지만 어두운 분홍색에서 흰색에 이르기까지 고양하고 지름은 4~6센티미터이고 월계화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상록 관목으로 가지는 녹색이고 곧게 선고 잎은 어긋나고 1-2쌍의 작은 잎으로 된 기수 우상 복엽이고 작은 잎은 타원형 또는 난형이고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꽃은 5월부터 가을까지 계속 피고 산방상으로 달리며 홍자색 또는 연분홍색이고 또한 겹꽃도 있으며 향기가 있고 열매는 둥글고 붉게 익는 것이 특징입니다

 

참고문헌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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